
재림 교회 역사 이야기
이 팟캐스트는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회의 역사를 다룹니다. 매 에피소드마다 교회의 중요한 순간들을 소개합니다. 믿음과 도전의 이야기를 통해 재림교회의 여정을 탐구합니다. 신자나 관심 있는 청취자 모두에게 적합합니다.
Episodes

51. 양심적 병역 거부자들 (1914-1919)
엘랜 화잇이 죽고 난 후, 재림교회를 기다리고 있던 도전은 제 1차 세계 세계대전이라는 인류 역사에 길이 남을 사건이었습니다. 모두가 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싸우고, 모두가 다 정의를 위한다고 외칠 때, 진영에 상관없이 재림 청년들은 양심을 지키기 위해 몸부림쳐야 했습니다. 이런 어려운 역사적, 문화적, 그리고 정치적 상황 속에서 교회의 지도자들, 특별히 전쟁에 참전하는 나라들의 재림 교회 지도자들은 교회와 정부와의 관계, 재림 청년들의 군복무 문제, 교회의 공식 인정 문제 등으로 어려운 결정을 내렸어야 했죠. 그 와중에도 특별히 어려웠던 점은 이런 어지러운 상황 속에 엘랜 화잇이 곁에 없었다는 사실입니다. 엘랜의 부재 속에 이런 어려운 정치적 상황들을 재림교회는 어떻게 맞이했을까요?

50. 편히 쉬세요
엘랜 화잇의 사역의 마지막은 어땠을까요? 재림교회를 위해서 인생의 모든 것을 바쳤던 엘랜의 삶의 마지막 여정을 살펴봤습니다. 이제 시즌 2에서 다시 뵙겠습니다. 청취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이세현 드림

49. 제 1차 세계대전 (1911-1915)
세상의 종말에 관심이 있을 수밖에 없는 예언에 관심이 많았던 재림교회 교인들은 제1차 세계 대전을 어떤 마음으로 바라보았을까요? 멀게만 느껴졌던 전쟁이 정작 자신들 앞에 나타났을 때... 교회가 어떻게 반응을 해야 하는가... 양심적 병역 거부와 어지러운 전쟁 속에서 교회 지도자들은 젊은이들에 어떻게 인도할 것인가? 하지만 그런 상황 속에서도 꾸준히 교회를 섬겼던 이들의 이야기를 해 봤습니다.

48. 매일 드려지는 제사 (1906-1910)
1910년부터 이루어졌던 각 시대의 대쟁투 폅집본 이야기와, 매일 드려지는 제사에 대한 예언적 해석이 가지고 온 교회 안에 폭풍에 대해서 이야기해 봤습니다.

47. 도시로!! (1906-1907)
도시 선교라는 것은 도시라는 지정학적 위치를 넘어, 도시라는 곳에 몰려드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예수님을 소개해야 하는가에 대한 패러다임의 변화였습니다. 세상이 변화하는 것에 대응해서 교회가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가 하는 것이었죠. 우리는 이런 변화에 어떻게 대응하고 있나요?

46. 전 세계로... (1905년 즈음)
이번 에피소드에서는 1900년대 초반에 재림교회가 해쳐 나가야 했던 도전들에 대해서 이야기해 봤습니다. 지난 3개의 에피소드에서 우리는 인종 문제를 재림교회가 어떻게 다뤘는지 이야기했었는데요, 당시에 인종 문제만이 있었던 것이 아니었죠. 데니얼스 대총회장을 고민하게 만들었던 문제들이 무엇이었을까요?

45. 인종 장벽 #5 (1903-1914)
시프 목사님과 데니엘스 대총회장님의 워싱턴 D.C.에서의 긴장감의 막바지를 향해 가고 있었습니다. 시프 목사님의 First 교회, 그리고 People's 교회, 그리고 대총회의 갈등은 어떻게 해결될 수 있을까요? 왜 대총회와 흑인 재림교회들과의 긴장감은 지속되었을까요? 오늘은 그 이야기들을 해 봤습니다.

44. 인종장벽 #4 (1903-1907)
당시 워싱턴 디씨에 있었던 First 교회, 그리고 시프 목사님이 개쳑한 Peoples 재림교회와 대총회장이었던 대니얼스 사이에 있었던 갈등, 오해, 그리고 깊은 감정의 골은 당시 재림교회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요? 지도자들의 인식이 교회 기관의 행정에 미치는 영향을 한 번 살펴봤습니다.

43. 인종장벽 #3 (1903-1913)
재림교회가 1900년 초기에 직면해야 했던 도전 중 하나는 남부주에 만연한 인종차별주의였습니다. 단순한 차별이 아니라, 아주 폭력적인 일들이 일어나고 있었고, 북부주에 뿌리를 두고 있던 재림 교회 사역자들이나 교인들은 그 점을 잘 이해하지 못했었죠. 이런 사회적인 배경 속에, 백인들이 흑인들을 돕는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목숨을 일을 수 있었습니다. 이 때, 엘랜 화잇이 언급했던 말들이 후에 남용되곤 했습니다. 어쩌면 한국에 있는 재림교인들에게는 생소할 수 있는 주제이지만, 쉽게 풀려고 노력했습니다.

42. 켈로그 #2 (1903-1907)
켈로그의 책, "The Living Temple" 이 가지고 온 신학적인, 그리고 교단적인 영향은 무엇이었을까요? 또 켈로그의 결정과 행동으로 통해서 볼 수 있는 재림교회의 정체성과 의미에 대해서 이야기해 봤습니다.

41. 켈로그 #1 (1901-1903)
켈로그의 시리얼을 아시나요? 켈로그는 재림교회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입니다. 켈로그와 재림교회, 그리고 왜 켈로그의 사역과 생각이 재림교회의 역사 속에서 큰 영향을 미쳤는지 살펴봤습니다

40. 연합회와 교회연합 (1901-1902)
재림 교회안에 있는 연합회 제도, 이것은 어떻게 시작 되었을까요? 또한 영향력있는 한 사람의 독주로부터 교회 전체를 지켜내는 방법은 무엇이었을까요? 오늘은 그 이야기를 해봤습니다.

39. 폭주하는 존스 (1891-1894)
A.T. Jones는 1888년 미네아폴리스 대총회 후에, 재림 교회 안에 가장 큰 목소리를 내는 사람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교회 안에서의 그의 영향력은 매우 강력했고, 많은 사람들이 존스에게 의지하고 귀를 귀울였죠. 하지만 그가 가진 영향력이 존스를 보호해주지 못했습니다. 한번 시작하면 끝을 보는 존스의 성격과 영향력이 함쳐졌을 때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에 대해서 이야기해봤습니다.

38. 남반구에서... #2 (1893-1900)
호주에서의 사역은 거의 기적에 가까웠습니다. 출판사역을 제정비하고, 교회 조직을 개편하고, 아무도 안된다고 했던 대학을 설립하고, 건강식품 사업을 시작하고, 요양병원 설립에... 아미 엘랜이 못하는 일이 먼가요?

37. 남반구에서 #1 (1893-1900)
시끌벅쩍한 미국을 떠나 호주로 떠난 엘랜 화잇은 어떤 경험을 했을까요? 거기에 더해서 엘랜의 아들 윌리의 러브스토리를 다뤄봤습니다.

36. 인종장벽 #2 (1891-1895)
에드슨 화잇으로부터 재림 교회안에 선교의 불을 지핀 미국 남부주의 선교, 여러가지 어러움들이 해방 노예들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읽지 못하고, 가난하고, 사회적으로 억압받던 이들이 재림신앙을 받아들이는데는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더 나아가 재림 교회 안에서조차 생각지 않은 어려움이 있었죠. 2025년인 지금까지도 인종 문제를 앓고 있는 미국, 1800년대 말, 이런 어려움 속에서 남부주에서의 사역은 어떻게 진전될 수 있었을까요?

35. 인종 장벽 #1 (1891-1895)
우리는 그동안 재림 교회의 선교사들이 전 세계로 파송되고있엇다는 이야기를 해왔었습니다. 하지만 정작 재림교회의 뒷마당인 미국 남부주에는 재림기별이 더디게 전해졌죠. 특별히 해방된 흑인 노예들을 위한 사역은 거의 없다시피했습니다. 엘랜 화잇은 남부의 사역의 중요성과 편견에 대해 이야기 했는데, 이런 어려움을 각오하고 남부로 가겠닥고 나서는 이는 많이 없었죠. 그러던 중 한 사람이 나서서 남부에 해방노예들을 위한 사역을 시작했는데... 놀랍게도 그 사람은... 누구였을까요?

34. 유배 (1889-1891)
미네아폴리스 대총회의 여파를 잠재우기 위해 전국을 투어하며 재림 교우들의 마음을 가라앉힌 엘랜 화잇, 와그너, 그리고 존스... 하지만 이들에게는 더 큰 도전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일들 후에, 엘랜은 호주로 파송?한다는 소식을 듣게 되는데요. 만일 여러분이 원하지 않던 파송 결정을 들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이것이 바로 엘랜이 고민했던 내용입니다. 가시겠어요? 아니면 다른 계획을 하시겠어요?

33. 재구성 (1888)
1888년 미네아폴리스 대총회 후, 어떤 일들이 기다리고 있었을까요? 모두가 다 존스와 와그너의 기별을 받아들였을까요? 대총회를 마치고 모두가 다 평안한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갔을까요? 이번 에피소드에서는 1888년 대총회 후, 엘랜 화잇과, 존스, 와그너가 마주했던 현실에 대해서 이야기 해봤습니다. 잠깐, 존스는 단순히 믿음으로 말이암는 의에 대한 것으로만 알려진 사람은 아니었죠. 존스는 재림 교회를 대표해서 미 상원에 초청되어서 1800년대 이슈가 되었던 일요일 법에 관한 청문회에서 재림교회를 대표해서 의원들 앞에서 재림교회의 입장을 설명하게 되었습니다. 1800년대는 참으로 쉴 날이 없던 때였음에 분명합니다.

32. 재림교회 내전 #2 (1888)
1888년 미네아폴리스 대총회에서는 어떤 일들이 있었을까요? 오늘은 그 대총회 때 이야기를 해봤습니다.

31. 재림 교회 내전 #1 (1887-1888)
1880년대의 일요일 휴업령으로부터 시작해 다니엘서의 열뿔과, 갈라디아서의 율번 논쟁으로 번진 긴장감, 이것을 업고 미네아폴리스로 향하는 엘랜 화잇과 재림 교회 지도자들... 여러분이 미네아폴리스의 대총회에 참석했다면 어땠을 것 같나요?

30. 법의 논쟁 (1884-1886)
버틀러와 와그너 사이에 형성된 팽팽한 긴장감, 1888년 미네아폴리스 대총회까지 계속되어서 쌓여져간 재림교회 안에 위기에 대해서 이야기 해봤습니다.

29. 존스와 와그너 (1884-1886)
재림 교인이라면 누구나 1888년 미네아폴리스 대총회에 대해서 이야기를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1888년 대총회에서 일어난 일들이 1888년에 일어난 일들만으로 이루어 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 전부터 일어났던 일들이 쌓이고 쌓여서 대총회 회의에서 분출된 것이라고 볼 수 있겠죠. 1888년 대총회를 통해서 이름을 날린 존스와 와그너, 이 둘은 어떤 사람들이었을까요? 이번 에피소드에서는 존스와 와그너에 대한 이야기를 해봤습니다.

28. 유럽에 간 엘랜 (1884-1886)
엘랜은 약 2년의 시간을 유럽에서 보냈습니다. 눈부신 유럽에서의 선교의 결실이라고 볼 수 있겠죠. 하지만 정작 유럽에서 초청을 받았던 엘랜은 망설였습니다. 엘랜의 유럽 여정은 어땠을까요? 이번 에피소드에서는 엘랜의 유럽 여정을 이야기해봤습니다.

27. 연합과 변화 (1881-1883)
이번 에피소드에서는 제임스 화잇이 죽음 후, 엘랜의 적응과정과, 유럽 선교, 그리고 배틀크릭 대학이 다시 문을 여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보았습니다. 이번 에피소드는 1881년에서 1883년 사이에 있었던 이야기기들 입니다.

26. 제임스, 그리고 그 후... (1880-1883)
이번 에피소드에서는 제임스 화잇의 장례식, 그리고 그의 죽음을 어떻게 교회 지도자들이 받아들였는지 살펴보았습니다. 또 재림 교회의 교육기관들이 어떤 상황이었는지, 특별히 베틀크릭 학교의 상태를 점검해봤죠.

25. 영웅이 쓰러지다 (1879-1880)
이번 에피소드에서는 일생을 바쳐 재림 교회를 섬겼던 제임스 화잇에 대한 이야기를 해봤습니다. 과연 재림교회는 제임스의 빈자리를 채울 수 있을까요?

24. 첫번째 선교사들 (1873-1879)
베틀크릭에서 시작된 학교, 그리고 유럽과 호주로 가기 시작한 재림교회 첫 세대 선교사들의 이야기를 모아봤습니다. 공식적인 첫 선교사였던 J.N Andrews의 마음은 어땠을까요?

23. 부부갈등 (1870-1873)
이번 에피소드에서는 1870년대에 엘랜과 제임스 부부가 겪었던 부부 갈등에 대한 이야기를 해봤습니다. 또 서부지역에 새로 생겨나기 시작한 재림 교회에 리뷰지와 같은 정기 간행물을 발행하기 시작했다고 했었죠. 그럼 1870년대에 엘랜과 제임스의 이야기를 들어볼까요?

22. 1870년대의 시작 (1870-1873)
이번 에피소드에서는 교회의 조직에 힘입어서 새로이 시작된 교육사업과 의료사업, (건강 개혁사업이라고 해야 하는게 더 정확할 수 있겠네요) 이 두 사업이 1870년대에 어떻게 재림교회에 중요한 기둥이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해봤습니다. 거기에 더해서 서부로 이주하는 트랜드를 따라 서부로 이사한 이들로 더불어 교회가 세워지고, 서부에서 시작되는 재림교회의 사역들도 살펴볼 수 있엇죠. 이렇게 서부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궁금했던 엘랜과 제임스도 서부로 향했다는 이야기를 해봤습니다.

21. 대총회장 제임스 (1865-1868)
이번 에피소드에서는 대총회장으로 선출된 제임스 화잇에 대한 이야기를 해봤습니다. 불행히도, 과로한 탓인지 제임스는 그가 경험한 5번의 뇌졸중 중에 첫번째를 경험하게 되죠. 남편을 보호하기 위해서 엘랜 화잇은 모든 것을 다 뒤로한체 남편 제임스를 보살폈습니다. 불행 중 다행으로 제임스가 회복되게 되었죠. 오늘은 대총회장으로 처음 선출된 제임스 화잇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보았습니다.

20. 건강 개혁 (1862-1863)
이번 에피소드에서는 19세기 당시를 배경으로 재림 교회가 어떻게 건강 개혁과 건강 원칙에 중점을 두게 되었는지를 이야기 해보았습니다.

19. 남북전쟁 (1861 - )
이번 에피소드에서는 미국의 내전이었던 남북전쟁이 새로이 태어난 재림 교회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살펴보았습니다. 우리는 재림 교인들이 국가에 충성하도록 하는가? 그러면 총을 들고 싸울 수 있는가? 아니면 그리스도인으로서 여섯째 계명을 지키기 위해서 우리는 군대에 갈 수 없는가... 당시 재림 교회 지도자들이 했던 고민들인데요,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18. 대총회 (1862-1863)
1860년대 초에는 정말로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특별히, 신문 광고를 통해서 전도 집회를 더 성공적으로 이끌었던 러포보로의 이야기를 시작으로, 엘랜 화잇이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 교회 안에서 가지는 위치에 대한 논쟁 역시 1860년대를 흥미롭게 해줬던 이유 중 하나였죠. 마지막으로, 미시간 주에 있던 교회들이 모여서 미시간 합회를 이루었는데, 그들을 따라서 다른 주들도 주 단위의 합회를 구성해 나갔습니다. 문제는, 이 합회의 대표들이 모여서 의사결정을 할 기구가 필요했고, 그것을 위해서 제임스 화잇은 대총회 (The General Conference)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남북 전쟁이 시작되어 내전에 대한 소식이 한창일 당시, 첫번째 대총회장으로 선출된 존 바잉턴은 어떻게 교회를 이끌어 갔을까요

17. 첫번째 지역 합회 (1861)
이번 에피소드에서는 재림 교회의 조직과정을 두번째로 이야기 하면서, 재림 교회 역사 안에서 처음으로 생겨난 첫 지역 합회에 대해서 이야기 해보았습니다. 미국의 남북 전쟁이 시작되던 때에 일어났던 일이었는데요, 미시간에 있던 재림 성도들이 첫번째로 미시간 합회를 구성하는 이야기 입니다. 아주 역사적인 순간입니다!

16. 드디어 이름! (1860)
이번 에피소드는 재림 운동이 더욱 더 조직적으로 복음을 전할 수 있도록 조직화되어가는 과정의 한 부분을 이야기 해 보았습니다. 그것을 바로, "제 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 라는 이름이 어떻게 결정되었는가 하는 것이죠. 오늘은 1860년에 총회로 모여서 이름을 결정했던 이야기를 해보았습니다.

15. 조직의 첫기둥 (1859)
이번 에피스드에서는 재림 운동이 조직화된 교회가 되가는 과정에서 일어난 중요한 사건 중 하나를 이야기 해 보려고 합니다. 그것은 조직적인 재정 헌신, 지원에 관한 것이었죠. 1859년, 거의 한해를 소비한 이 프로젝트에 결과는, 모두가 다 부담 없이 헌신할 수 있는 헌금제도를 만들어난 것이었습니다. 이 조직적인 헌금제도로 재림운동에 헌신하는 사역자들을 재정적으로 지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당시 재림 운동에 헌신하는 사역자들은 심각한 재정적 부담을 떠안고 있었습니다. 조직적인 헌금제도야말로, 재림 운동이 제 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 교회로 도약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이라 볼 수 있죠. 이번에는 어떻게 이런 결정을 내렸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해봤습니다.

14. 대쟁투의 시작 (1858-1860)
이번 에피소드에서는, 엘랜이 본 대쟁투의 이상이 어떻게 우리가 보고 읽는 "각 시대의 대쟁투"가 되었는지.. 또한 어떻게 편집에, 편집에, 편집을 거쳐왔는지에 대해서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또 아주 자유로운 영혼이었던 크제코스키에 유럽 선교에 대한 이야기를 담아봤습니다.

13.증기 인쇄기 (1857-1858)
이번 에피소드에서는 리뷰가 드디어 산업화에 걸맞는 인쇄기로 업그레이드 한 이야기를 해봤습니다. 더 나아가서 엘랜과 제임스 화잇 부부가 아이오와주의 와콘에 있었던 성도들과의 갈등이 해결되어가는 파란만장?한 이야기를 이번 에피소드에 담아보았습니다.

12.아이오와에서... (1855-1856)
이번 에피소드에서는, 미시간주 베틀크릭에서 새로이 삶을 시작한 제임스와 엘랜 화잇, 그리고 탠트를 가지고 장막 집회를 하러 뉴욕주를 돌아다녔던 러퍼보로, 그리고 마지막으로 힘든 여행 일정과, 재정적인 압박을 견디다 못해 사역을 떠나 아이오와주 와콘에 눌러앉았던 두 사역자를 방문했던 화잇 부부의 이야기로 꾸며봤습니다. ㅎ

11. 베틀크릭 (1852-1859)
이번 에피소드에서는, 뉴욕주 라체스터에 있던 리뷰 인쇄소가 미시간주 베틀크릭으로 옮겨지는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리뷰가 옮겼다 함은, 재림 운동의 본부가 움직였다고 할 수 있겠죠?

10. 폭풍성장 (1851-1854)
이번 에피소드에서는 제 칠일 안식일을 지키는 재림 성도들이 마주쳐야 했던 성장과 도전들을 살펴보고, 또한 왜 교회 조직이 필요해졌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았습니다. 또한 리뷰 인쇄소가 뉴욕주에 라체스터로 옮겨진 이야기도 빠뜨릴 수 없죠. 재림 운동에 참여한 재림 성도들에게 어떤 도전이 다가왔을까요?

9. 출판사역 (1849-1850)
이번 에피소드에서는, 재림 운동에 일환으로 출판 사역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는 살펴보려고 합니다. 출판 사역은 교회가 공식적으로 조직되기 전부터 시작되었으니, 재림 교회의 출판사역의 역사는 교회의 역사보다 더 길다고 볼 수 있겠죠. 하지만, 그것 때문에 재림 운동의 두 저명한 지도자들의 갈등도 시작됩니다. 왜 그런 일이 있었을까요? 이번 에피소드에서 그 이유를 살펴보려 합니다.

8. 네트워킹 (1846-1849)
이번 에피소드에서는 어떻게 재림 운동 삼총사가 두가지 방법으로 안식일과 재림 기별을 전하기 시작했는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재림 운동 삼총사, 누군지 기억하시나요?

7. 제임스와 엘랜
이번 에피소드에서는 제 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 교회의 설립자들 중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제임스와 엘랜 화이트 부부를 만나보려고 합니다. 머 그렇다고 해서 죠셉 베이츠가 등장을 안하는 건 아니지만요..ㅎㅎ

6. 안식일
이번 에피소드에서는 어떻게 제 칠일 안식일이 제 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 교회의 선구자들에게 소개가 되었는지 살펴보고자 합니다.

5. 멈출 수 없었던 메세지...
이번 에피소드에서는, 밀러주의자들이 어떻게 대 실망을 극복하고, 더 나아가 그들이 어떻게 1844년 10월 22일의 의미를 찾고자 했는지를 살펴보려 합니다. 여기서 빠질 수 없는 인물, 죠셉 베이츠에 대해서도 더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4. 실망
이번 에피소드에서는 밀러주의자들이 예측했던데로 예수님이 1844년 3월 21일에 오셨는지, 4월 18일에 오셨는지... 아님 10월 22일에... 하여튼, 만일 그 때 오셨다면 우리가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지 않겠죠? 이번엔 1844년에 밀러운동과 밀러를 따랐던 이들이 겪었던 실망에 대해 알아 보려고 합니다.

3. 예언가 윌리암 밀러 (2)
이번 에피소드에서는, 윌리암 밀러가 그의 성경 연구를 통해서 1843년 쯤에 예수님이 재림하신다는 결론에 도달한 후 그리스도인으로 회심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2. 윌리암 밀러 (1)
이번 에피소드에서는 재림 교회의 영적 아버지, 윌리암 밀러 William Miller를 만나보겠습니다.
결혼 후 이신론자로 살았던 밀러가 어떻게 하나님 아버지를 찾는 사람이 되었을까요? 또, 그런 밀러는 성경을 어떻게 공부했을까요?

1. 시작 (The Beginning)
첫번째 에피소드 "시작"에서는 제칠일 안식일 예수재림 교회가 시작될 때의 종교적,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인 배경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역사적 배경은 1700년대 말부터 1800년대 초반, 당시의 역사적 배경이 재림 교회의 시작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또 어떻게 재림 운동이 시작될 수 있는 토양이 되었는지 살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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